두뇌는 평등하다 - 과학은 왜 여성을 배척했는가?

여성성과 과학의 오래된 대립을 파헤치다!
진귀한 문헌과 삽화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난 과학 속 여성의 역사

역사적으로 이름난 여성 과학자의 이름을 댈 수 있는가? 아마도 마리 퀴리 말고는 이렇다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반면에 삼척동자도 다 아는 위대한 남성 과학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과학에 소질이 없는가? 그렇다면 지적 능력에도 성별이 있는가? 이는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돌고 도는 화두다.
여성은 단지 성별 때문에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주류 과학계에서 철저히 배척되어 왔다. 저자 론다 쉬빈저는 이 문제를 ‘여성성과 과학 사이에서 오랫동안 벌어진 싸움’이라고 보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과학계에서 지워진 여성의 역사를 되살렸다. 동시에 현재 형성된 젠더 이론에서 과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고찰하고, 나아가 과학이 사회ㆍ문화ㆍ정치적으로 이미 형성된 가치관에서 자유로운지를 묻는다.

“남성들이 대학에서 글을 읽는 것처럼 벽장 속에서라도 글을 읽어야겠다(본문 중에서).”
_마거릿 캐번디쉬

근대적인 학술기관들은 여성이 활발히 참여한 궁정 아카데미를 모태로 생겨났는데도 여성을 배척했다. 그러나 학문적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여성들은 때로는 무시를 받으며, 때로는 남성의 이름을 빌리며 힘겹게 과학을 계속했다. 저자 론다 쉬빈저는 우선 과학계 여성의 위치를 제도 기관의 변화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연관지어 분석한다. 그리고 과학계에서 무시된 여성 과학자들의 극적인 삶을 생생히 되살린다.
영국 자연철학자 마거릿 캐번디시 공작 부인(1623~73)은 자신만의 대담한 철학을 담은 책을 21권이나 펴냈지만, 남성 학자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학문에 조예가 깊지 않다. 그렇다고 나를 탓하지는 말기 바란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 여성은 학문을 제대로 닦을 수 없으며 학교나 대학에서 가르침을 받지도 못한다.”
볼테르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뛰어난 물리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도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내가 왕이 된다면, 인류의 절반을 봉인하는 악습을 뜯어고치겠다. 나는 여성도 인간의 모든 권리를, 무엇보다도 배움의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이다.”

여성은 물론, 여성적인 것도 남김없이 과학에서 나가라

저자는 근대과학이 배척한 것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여성적’이라고 여기는 것 모두였다고 강조한다. 고대를 지나 근대로 오면서 여성성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한 내용은 달라졌지만, 여성성이 남성성보다 열등하다는 관념은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서구 전통에서 의인화 기법을 사용하여 과학을 표현할 때 과학은 대부분 여성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근대에 새로운 과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여성적 문체, 여성적인 가치관, 과학서의 장식적 요소 등과 함께 배척 대상이 되었다. 근대과학이 고대와 중세의 전통과 단절하는 과정에서, 배척해야 할 구세대적 가치를 싸잡아 ‘여성적’이라고 칭하면서 새롭게 지향하는 과학적 속성들을 명료화하고 정당화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가령 남성적 철학을 주창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고대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여자처럼’ 나약하고 수동적이며 무기력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기묘하게도 젠더에 대해서는 남성성은 뜨겁고 여성성은 차갑다는 둥,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부한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누가 여성을 배척했는가? 꼭 맞아떨어진 정치ㆍ사회ㆍ과학의 이해관계

르네상스 시대처럼 신분이 성별을 압도하던 시기에는 여성도 학문에 활발히 참여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귀족적 특권의 조종을 울리면서 더 이상 귀부인들이 학계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루소가 『에밀』(1762)에서 여성은 남성을 보완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주장한 그 시기를 전후해서 유럽 사회에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귀부인들은 살롱이 아니라 집으로 가라고 강요당했고, 이상적인 어머니 상이 대두했다. 이런 움직임의 원인으로 정치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정부 관료들은 인구가 많아야 강력한 국가라고 판단했고, 아이를 방치하는 어머니도 인구 감소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의학집단은 모유 수유 예찬론을 펼치는 한편,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자연이 여성에게 부여한 본성이자 역할임을 ‘증명’했다. 프랑스 의사 조쿠르(1704~79)는 1765년에 『앙시클로페디』에 기고한 글에서 남녀 골격의 차이를 낱낱이 비교하며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는 것이 여인의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의학집단의 도움을 받아,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론을 주창하면서 여성을 계속 종속시키는 방법을 고민한 계몽주의자들은 해답을 찾았다.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여성을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19세기까지 이어져, 실증주의의 아버지 콩트(1798~1857)도 여성은 자연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영원히 해방될 수 없다고 믿었다.

"정신은 성별이 없다(The Mind Has No Sex)?" : 철학자들의 침묵과 모순

과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칭송을 받는 근대 인식론의 아버지 격인 데카르트와 로크의 철학은 근대 페미니즘의 초석이 되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타고난 지성’을 지닌다고 주장했으며, 베이컨처럼 남성성은 뜨겁고 여성성은 차갑다는 아리스토텔레스식 논리를 지양했다. 로크는 성별에 관계없이 시간이 많아 공부할 시간이 많은 계급이라면 지적 능력이 같다고 보았다. 프랑수아 폴랭 드 라 베르는 데카르트 철학을 신봉했고, 이에 기반하여 "정신은 성별이 없다The mind has no sex"라고 선언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데카르트와 로크 본인들은 여성문제에 있어서 침묵만 지켰다. 성평등주의자들은 근대 해부학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의학집단은 성차는 두뇌와 골격을 포함한 전신에 존재한다며, 루소를 포함한 성적 상보주의자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계몽주의 사상가 칸트는 박학하기로 유명한 다시에 부인이나 에밀리 뒤 샤틀레를 두고 과학을 하고 싶으면 수염을 기르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칸트는 위대한 인간 존중 사상이 담긴 정언명령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인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은 듯하다.

론다 쉬빈저는 흔치 않은 문헌과 도판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과학의 이름으로 쓴 젠더의 ‘신화’를 파헤쳤다. 여성은 오랫동안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새로운 학문적 흐름을 공유할 동료도 없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의 지적 능력을 정의했다. 그리고 과학을 남성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비과학적인 것을 여성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여성 과학인의 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학은 ‘남성적’이며 여성 과학자가 늘어나면 과학에 변화(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가 생길 거라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여성성과 남성성이 동일한지, 고유한 차이가 있는지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경제ㆍ정치ㆍ이데올로기ㆍ문화 전반에서 아직도 성차별이 산재하다. “우리는 여성이 젠더 차이로 인해 고통 받는 일이 없어질 때까지 이에 대한 분석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