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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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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2012년 07월 04일 출간 정가 36,000원 페이지 824 Page

■ 머리말
■ 들어가는 글 - 마르크스주의의 희망은 왜 절망이 되었나?

1부 기원 - 1917년 이전

1장 마르크스 이전의 공산주의
바뵈프부터 블랑키까지
2장 마르크스와 엥겔스
과학으로 무장한 예언자
3장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도전
바쿠닌과 베른슈타인

4장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갈라선 동지들
5장 레닌과 10월혁명
왜 볼셰비키가 승리했는가?
6장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인가, 당 독재인가

2부 실험 - 1917∼1929

7장 유럽의 소비에트 혁명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람시
8장 생존 투쟁과 권력 투쟁
트로츠키냐, 스탈린이냐
9장 코민테른
세계 공산주의 혁명본부
10장 미국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천국에서 혁명하기
11장 지식인과 공산주의
비판의 논리, 동조의 논리
12장 ‘일국 사회주의’ 건설
공포 위에 세운 체제
13장 소비에트 권위주의
개인이 사라진 국가

3부 도약 - 1929∼1947

14장 반파시즘 전선
요동치는 세계 혁명 전략
15장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적자
16장 무오류의 당
반대 없는 유일 체제
17장 적과 친구
‘스탈린 열광’의 비밀
18장 히틀러와 스탈린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대결
19장 전후의 동유럽
강요된 평화

4부 확산 - 1947∼1957

20장 냉전과 소비에트 블록
둘로 나뉜 세계
21장 유고슬라비아의 새로운 길
티토, 스탈린에 맞서다
22장 서유럽 공산주의의 타협
지하 정당에서 대중 정당으로
23장 프로파간다 전쟁
화약 냄새 없는 싸움
24장 마오쩌둥과 중국 혁명
프롤레타리아 없는 공산주의
25장 소련의 복제 국가들
알바니아에서 평양까지
26장 흐루쇼프의 탈스탈린
추락하는 ‘살아 있는 신’

5부 변형 - 1957∼1979

27장 공산주의 팽창과 데탕트
적과의 동침
28장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마오쩌둥의 위기와 회생
29장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섬나라에서 혁명이 살아남는 법
30장 철의 장막, 죽의 장막
농담 없는 통제 사회
31장 공산주의 다시 생각하기
마르쿠제, 사르트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32장 동유럽과 서유럽
프라하의 봄과 유러코뮤니즘
33장 좌절과 급진화
혁명적 순수성과 테러리즘의 부활
34장 마지막 공산주의 혁명들
호찌민에서 아옌데까지

6부 종언 - 1980년 이후

35장 소련의 몰락
미국은 소련의 해체를 원했을까?
36장 1989년 동유럽 혁명
체제 붕괴의 도미노
37장 덩샤오핑의 개혁
자본주의적 공산주의, 키메라의 탄생
38장 고르바초프의 실패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레닌?
39장 흩어지는 동지들
잃어버린 변혁의 꿈
40장 결산
공산주의 성공과 실패의 이유

■ 주석
■ 참고문헌
■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출처 : 알라딘 
저:김남섭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인디애나대학 역사학과에서 러시아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서울대, 인하대, 가톨릭대 등에서 서양사를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울산업대 기초교육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러시아의 민족정책과 역사학』(공저),『세계의 과거사 청산』(공저),『꿈은 소멸하지 않는다』(공저) 등이 있고,『러시아의 민중문화: 20세기 러시아의 연예와 사회』,『20세기 러시아 현대사』,『소련 경제사』등을 번역했으며, 소련 역사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주요 관심사는 스탈린시대의 소련 역사로 최근에는 스탈린 테러와 강제수용소의 실상에 관한 연구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

저:로버트 서비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 러시아 근현대사의 권위자로서 특히 혁명사 분야에서 업적을 인정받았다. 서구 학계와 평단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야심찬 연구 성과를 끊임없이 발표해 왔다. 《스탈린 : 공포의 정치학, 권력의 심리학》을 비롯하여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생애를 분석한 평전 3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의 저작은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냉정한 분석을 앞세우는 연구 태도, 방대한 자료 조사, 간결하고 힘이 넘치는 문체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47년에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에섹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환 연구원으로 옛 소련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영국 킬 대학 교수를 지냈다. 1998년부터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영국학술원 특별 정회원이다.

출처 : 예스24 
그 이념은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었고, 실현되었을 때 가장 파괴적이었다
평등한 낙원을 꿈꾼 투사들의 피와 땀이 밴 역사

예수 이래 모두가 평등한 지상낙원을 꿈꾸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19세기에 그 꿈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얻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피를 흘렸고, 역사적 임무가 자신의 어깨에 실려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스스로 코뮤니스트(Communist), 즉 공산주의자라 칭했다.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 카스트로, 호찌민, 티토, 김일성에 이르기까지 지구 표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의 정치적·사상적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를 자칭했다. 만년설로 뒤덮인 극지를 제외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공산주의자가 존재했다. 러셀과 사르트르에서 마르쿠제와 알튀세르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공산주의를 논했고, 피카소와 고리키에서 조지 오웰과 앙드레 지드까지 무수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공산주의를 찬미하거나 비판했다.
그러나 소련에서 처음 실현된 지 7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공산주의는 도미노처럼 붕괴하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가 잇따라 공산주의를 포기하거나 자본주의와 타협했고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동상은 짓밟혀 부서졌다. 공산주의의 적들조차 이 급격한 몰락에 깜짝 놀랐다.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매혹적이었던 이념은 순식간에 그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이념이 문제였을까? 역사적 상황이 문제였을까? 지도자의 사악함이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논쟁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맞섰다. 고함과 냉소로 얼룩진 이 역사적 논쟁의 한복판에서, 혁명사 연구의 대가 로버트 서비스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을 차분하고 치밀한 자세로 추적한다.

평등한 세상을 꿈꾼 숭고한 이상이 왜 처참한 독재로 추락했는가?
끝나지 않은 논쟁에 역사학의 대가가 정면으로 맞선다!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추구했던 고결한 이념이 왜 처참한 독재로 추락했을까? 인간 해방의 꿈으로 뭉친 ‘동지들’이 왜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게 되었을까? 《코뮤니스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태동과 발전, 성공과 몰락을 전 세계적 범위에서 조망하는 책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숫자만큼 많은 공산주의가 존재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서로 자신의 공산주의가 진정한 공산주의라고 주장하며 싸웠다. 그러나 실현된 모든 공산주의에는 근본적인 유사성이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혁명적 열정은 목표를 위해 억압과 폭력까지 용납하게 만들었다. 승리를 쟁취하자마자 거의 모든 곳에서 분열이 따라왔다. 이상을 지키려다 현실과 타협하고 이상을 배반하는 자기모순이 이어졌다. 자유롭고 평등한 낙원의 꿈은 비참하고 가혹한 독재로 굳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코뮤니스트》는 공산주의 운동의 성공과 실패의 근본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공산주의의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통찰을 내놓는다. 이제까지 공산주의자가 집권한 모든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아우르고, 공산주의 투쟁과 공산주의를 둘러싼 논의에 참여한 다양한 역사 속 인물들을 일관된 렌즈로 포괄한다.
이제까지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야심찬 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의 태도는 신중하고, 시선은 날카로우며, 문체는 명쾌하다. 폭넓은 조사와 깊이 있는 분석을 발판으로 삼아 이 책은 ‘이상의 좌절’에 얽힌 복잡한 수수께끼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마르크스를 읽는 당신, 공산주의를 아십니까?
21세기 한국에서 마르크스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의 착취와 경쟁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아프냐고’ 물어보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우리는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현대를 어떻게 볼지 상상하며 우리 시대의 문제를 고찰한다. 19세기를 산 이 혁명 사상가는 오늘날의 사회가 진보하는 데도 유효한 지침을 제공해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실현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사회 변혁의 영감을 얻은 사람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론적 전망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당대의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실현된 마르크스주의의 형태는 제각각이나 우리는 그 모든 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아주 익숙한 단어를 알고 있다. ‘공산주의’가 그것이다.

역사상 가장 유력하고 혁신적이었던 진보적 실천,
공산주의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운다

공산주의는 마르크스 이전부터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매혹적인 사회 변혁의 이상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대안 중 공산주의만큼 유력한 이념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 능동적으로 사회를 바꾸려 한 노력 중 공산주의 혁명만큼 극적으로 성공하고 또 실패한 시도 또한 이제껏 없었다. 공산주의의 성공과 실패는 지금도 여전히 논쟁적인 질문을 수없이 남겼다. 신념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이상을 실현하고자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가, 이상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맞서야 하는가? 진보적 신념을 공유한 동지들이 결국 신념의 차이로 분열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빨갱이’와 ‘종북’이라는 낙인찍기가 두려워 한국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공산주의의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변혁의 이상이 현실에서 드라마틱하게 실현되고, 성공적으로 퍼져 나가고, 그 과정에서 분열하고 왜곡되어 결국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에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교훈이 무수히 많다.

독보적인 책이다. 품격 있고 우아하다. 서비스의 결론은 강력하고 충격적이다. _The Daily Telegraph

바로 지금 읽혀야 할 야심찬 책이다. 폭넓은 시야를 보여준다. _The Observer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역사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이 대작의 심장부에는 이제껏 이처럼 강력하게 제기된 적이 없는 핵심적 모순에 관한 보고서가 존재한다. _New Statesman

로버트 서비스는 이 흥미진진하고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책에서 역사를 공정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_리처드 오버리(Richard Overy), 《독재자들》 저자

공산주의의 이상이 지닌 고결함과 그 무시무시한 결과를 대가의 필치로 다루고 있다. _Financial Times

로버트 서비스가 내놓은 최고의 연구 성과다. 마르크스주의 논쟁에 등장하는 난해한 용어들을 피하면서 공산주의의 지적 기원과 계보, 그리고 영향에 관한 매혹적인 보고서를 완성했다. _The Economist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에 통달하고 그 자료들 사이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능력 모두를 요구하는, 절로 주눅 들게 만드는 프로젝트다. _New York Sun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냉정하고 과감한 답변
이념, 체제, 인물을 아우르는 세계 공산주의 연구의 완결판!

너무나 다양한 공산주의가 존재해 왔다. 똑같은 공산 국가라 해도 시끌벅적한 바와 레스토랑이 운영되는 쿠바와 엄격한 통제 아래 3대째 세습이 이루어지는 북한, 민족 전통이 판이하게 달랐던 중국과 폴란드의 차이점을 들기란 어렵지 않다. 저자 역시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기가 까다롭다는 것을 인정한다. “공산주의 자체는 그것을 정의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의견의 완전한 최종 일치도 있을 것 같지 않다. 한 공산주의자의 공산주의는 다른 공산주의자의 반(反)공산주의이며, 이러한 상황은 변할 것 같지 않다.”(3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현된 전 세계의 공산주의 체제에는 공통점이 존재했으며, 공통점을 바탕으로 이제까지의 공산주의 체제를 일반화해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공산주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주의와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했으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레닌과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에 근거를 둔 소련식 모델로 실행되었다. 또한 소련식 모델의 근본적인 특징을 복제하지 않은 공산주의 실험은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단 하나의 공산주의 국가만이 소련 사회가 겪은 기본적인 어려움을 경험했다면 그것은 기이한 우연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한 나라가 아니라 모든 신생 국가가 소련 사회를 시초부터 괴롭혔던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공산주의 통치의 구조와 실제, 그리고 사상은 희한하게도 똑같았다. 공산주의 통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심지어 당 관리 자신들까지 포함하여 마찬가지로 유사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유럽 경제로 통합된 산업화한 도시 사회였으며, 반면 알바니아는 극단적인 농업 사회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반응하는 양상은 공통적이었다. - 472쪽

《코뮤니스트》는 이처럼 과감한 결론을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공산주의 연구의 완결판이다. 혁명사 연구의 권위자 로버트 서비스는 이 책에서 한 세기에 걸쳐 전 세계에서 실현된 공산주의 이념과 체제,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인물들을 일관된 시각으로 아우른다는 거대 프로젝트를 대가다운 필치로 소화해낸다. 이 책은 광범위한 시공간에서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펼쳐진 공산주의 세계사를 지적이면서도 흥미를 끄는 어조로 안내하는 동시에, 모든 공산주의를 관통하는 명쾌하면서도 신중한 역사적 통찰을 제공한다.

로버트 서비스의 날카롭고 섬세한 손길이 닿는 순간,
역사 속 혁명가들이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된다!

저자 로버트 서비스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의 초상을 캐리커처를 그리듯 흥미진진하게 묘사함으로써 800쪽이 넘는 세계 공산주의의 역사를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미있는 책으로 완성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공산주의를 옹호하거나 비판한 정치가, 혁명가, 언론인, 작가, 예술가들이 책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예를 들면 한때 공산주의를 적대시했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자국의 혁명을 지키기 위해 소련과 손잡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혈기 넘치고 호탕한 카스트로의 성격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묘사된다. 근본적이고 억압적인 공산주의가 장악했던 중국에 덩샤오핑의 개혁으로 자본주의가 도입되는 양상은 프랑스 유학으로 자본주의를 접했던 키 작고 소탈한 성격의 덩샤오핑과 말년에 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던 마오쩌둥을 대비하며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사회주의에 공감했던 소설가 조지 오웰과 레닌주의를 신뢰했던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이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쪽으로 변해 가는 과정은 그들이 각자 에스파냐 내전과 러시아 내전에서 보고 겪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적 모습과 함께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인상적으로 서술된다.
저자는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골라내 한두 줄의 문장만으로도 각 인물의 개인적 성격뿐 아니라 그 인물이 취했던 정치적 입장이 지닌 의의까지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역사적 인물을 ‘인간’으로 그려내는 예민한 시선이 겸비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성과다.

마르크스주의에 문제의 씨앗은 이미 들어 있었다
지적 견고함을 장담하는 그들의 주장은 고통스러운 타격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왜 이 타격을 무시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추종자들에게 무오류의 교리이자 종교의 정치적 대체물이 되었다. - 69쪽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제시한 공산주의에 이미 분열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데올로기 분쟁은 마르크스주의 유전자의 특징이었다.”(24쪽) 유동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이 무오류의 ‘신’으로 대접받았다는 사실은 누가 이단인지를 놓고 끝없는 논쟁과 내부 숙청이 벌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은 자신들이 관찰한 세계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지식인으로서 그들은 한번 생각한 것을 기꺼이 다시 고찰하며 살아가고자 했다. 때때로 당면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손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근대성에 대한 유일한 과학적 분석가라는 이미지를 퍼뜨렸다. 이것은 지적 무오류를 주장하는 것과 동일했다. …… 그 결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들어야 할 예언자로 대우받았다. - 60쪽

마르크스가 신처럼 대접받았다는 점뿐 아니라 공산주의 자체도 종교와 닮은 점이 많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기독교의 천년왕국 사상은 메시아의 재림과 더불어 천국에서 완벽한 세상이 탄생하리라고 굳게 믿었고, 공산주의자들은 역사 발전의 근본 경로가 정해져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지상에서 완벽한 사회를 수립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창건자 자신들이야말로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을 반동적인 것으로 공격하면서도 일종의 세속적 형태의 종교적 의식에 물들어 있다는 의심을 항상 받아 왔다.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길러진 그들은 결코 그 전통을 완전히 뿌리치지 못했다. 그들은 완벽한 미래 사회와 인류의 구원에 관한 종교 사상에 무의식적으로 계속 영향을 받았다. 유대교도나 기독교도만큼 확고하게 무신론이라는 믿음에 집착했다. - 291쪽

사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긴 이론적 유산에는 일관성이 부족했다. “때때로 그들은 폭력적인 권력 장악과 일시적인 독재를 지지했다. 다른 때에는 평화적인 집권을 요구했다.”(63∼64쪽) 게다가 마르크스는 과학에 근거한 사회 발전 이론을 제시했으면서도 실제로는 경험에 비추어 실천적 권고를 계속 바꾸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사회주의자 베라 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러시아의 농업 사회주의자들(즉 나로드니키)이 수행하는 혁명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58쪽)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가치 있는 사상과 통찰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고유한 경향을 정확히 분석했고 그가 예측한 경제적 변화의 양상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인정한다. 인간을 둘러싼 조건이 변함에 따라 인간 의식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꿰뚫어본 마르크스의 통찰력은 훌륭했다.
문제는 마르크스주의가 수용된 방식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검토하는 식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에 의존했다. 《자본론》이나 《반뒤링론》에 모순이 존재하면 그 모순을 부인하거나 어떻게든 사소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이도록 했다.”(60쪽) 따라서 마르크스 이후 공산주의 세계의 패권은 자신이 마르크스의 적자임을 입증하는 자가 쥐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비범한 교리가 어떻게 이용될지 거의 예감하지 못했다.”(65쪽)

레닌은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폭력과 독재를 발굴했다
레닌은 그것은 무조건 독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외의 다른 어떤 것도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중간 계급과 상층 계급은 필연적으로 반혁명을 지지할 것이며 그들이 머리를 쳐들 때마다 억압되어야 할 것이다. - 109쪽

마르크스가 꿈꾼 혁명은 산업화한 영국이 아닌 황제가 농민들을 통치하던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혁명을 진두지휘한 레닌은 당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과격한 인물이었다. 그는 “평화적인 사회주의 전략은 결코 실행 불가능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뒤따를 폭력적 봉기만이 유일하고 가능한 발전 경로라고 절대적으로 고집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르침’에 대한 자신의 이해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주장했다.(110쪽)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폭력을 곧잘 언급하기는 했으나 폭력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해 고정된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레닌은 지적 탐정처럼 그들의 글 속에서 참고할 만한 것을 찾아 헤맸다. 그러므로 레닌의 분석은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지적 영웅들이 쓴 일관성 없는 글들에 매우 선별적으로 의존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109쪽) 저자는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성급하고 특이하게 해석”(110쪽)했다고 설명한다.
레닌은 자신의 구상이 성공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독재와 내전에 기반을 둔 혁명의 위험에 대해 멘셰비키와 사회주의자혁명가당을 비롯한 다른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한 경고는 안중에 없었다. 그러나 레닌의 사상을 처음부터 모든 볼셰비키(레닌이 속해 있던 러시아 사회주의의 분파) 구성원이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

레닌은 아직 이 사상을 당에 부과할 엄격한 강제력이 없었다. 중앙위원회에서조차 다수파는 임시정부를 전복한 후 멘셰비키나 사회주의자혁명가당과 정부의 직책을 나눠 갖는 것을 거부하는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 당의 하층부에서도 일당 독재 사상을 똑같이 꺼림칙하게 여겼다. …… 레닌과 그의 측근들은 자신들의 의도에 대해 계속 입을 꼭 다물었다. 권력을 잡기 전에 당 내부를 최대한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레닌이 혁명을 수행하는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기술이라고 말했을 때, 까닭 없이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기술이 직관과 용맹뿐 아니라 은폐도 포함한다고 덧붙였을지도 모르겠다. - 111∼112쪽

10월혁명으로 볼셰비키가 집권하기 직전까지 레닌의 아이디어에 의문을 품은 이들은 존재했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위원인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도 혁명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에 확신이 흔들림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뒤 재빨리 후퇴했다. 동지들과의 연대가 차분한 숙고보다 우선했다. 그들의 삶은 당원이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껴야 했다. 너무 합리적이어서 레닌의 계획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당을 떠날 뿐이었다.”(114쪽)

동지들의 분열은 필연이었는가?
스탈린은 그들이 완전히 고분고분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 “트로츠키가 내게 도전을 했죠. 그는 어디 있습니까? 지노비예프가 내게 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죠? 부하린도 내게 반항했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죠? 그리고 여러분은?” - 200쪽

의견이 다른 옛 동지들을 배제하는 작업은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뒤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못지않게 사회주의 정당이나 사회민주주의 정당, 노동당을 경멸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올바른 정책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좌파 내부에 있는 자신의 적들을 대의의 배신자로 여겼다.”(174쪽) 심지어 히틀러의 나치가 대두할 때도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즘과 싸우기보다 “부르주아와 ‘계급 협력’을 했다면서 유럽 사회주의자들을 중상하는 데 집중했다.”(271쪽)

그들 모두는 한때 동일한 사회주의인터내셔널에 속해 있었다. 일부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일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노동 계급에게 이로운 정치적 행동에 미래가 달려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치적 행동이 궁극적으로 지상에 완벽한 사회를 창조할 것이라고 열렬히 믿었다. 그러나 이제 높은 벽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 174쪽

죽음을 앞두고 후계자에 대해 걱정하던 레닌은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후계 때문에 경쟁한다면 당의 분열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신이 직접 통제하고 있을 때에만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레닌은 자기가 없어도 충분히 지탱할 만큼 튼튼한 구조와 실천을 만들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160쪽) 레닌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1920년대에 러시아공산당 내에서 발생한 정파 갈등은 다른 곳에서는 결코 필적하지 못할 만큼 절정에 달했다. 트로츠키를 물리치고 권좌에 오른 스탈린은 1930년대에 소련 공산주의 지도자 대부분을 숙청하는 대테러를 감행했다. “고위직 보유자는 그들의 목숨을 살려줄 급박한 이유가 없으면 반역자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 스탈린이 숙청할 때 했던 가정이었다.”(243쪽)
레닌처럼 스탈린도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 중 현재 상황에 적합한 것을 골라 목적에 따라 해석했다. 숭배와 추종, 배제와 숙청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종착지는 독재로 통치되는 유일 정당·유일 이데올로기 국가였다.

스탈린의 마르크스학 학자들은 또 마르크스가 1857∼1858년에 초안을 썼던《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을 출간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은 개인이 외부의 강제 없이 인간적 잠재력을 완벽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를 창조하는 데 최고의 우선순위를 둘 것을 강조하는 철학 논문이었다. 대테러가 벌어지는 소련에서 이 논문은 지도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 290쪽

소련은 국제 공산주의 조직인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을 결성하고 외국의 공산주의 혁명을 이끌고자 했지만 1925년 불가리아와 1927년 중국에서 연이어 실패했다. “분파 투쟁에서 패배한 트로츠키는 스탈린과 부하린의 오판에 환호했다.”(188쪽) 동지들의 분열은 어떤 공산주의의 실패가 다른 공산주의의 성공을 뜻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분열은 소련뿐 아니라 다른 공산 국가에서도 이어졌다. 에스파냐 내전에서 에스파냐공산당은 소련의 지령에 따라 아나키스트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숙청하는 데 전념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권력 장악 이후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그 자신의 세력을 숙청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지적한 류사오치와 그의 모든 지지자들을 제거 대상으로 낙인찍었다.
분열은 국가와 국가 차원에서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국제 공산주의의 분열은 주로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유고슬라비아의 경우에도, 중국의 경우에도 비난할 때 사용되는 형용사는 똑같았다. 상대방은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하지 않은 수정주의자였다.

(스탈린은) 유고슬라비아인들이 세계 강국인 소련의 위상을 무시했다고 비난하는 문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유고슬라비아인들이 발칸을 지배하려 했다. 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하지 않았다. 아니 세상에, 티토는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 마르크스를 언급했을 뿐 스탈린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 문서에 따르면 티토와 그의 동지들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티토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소련에 도전했다. - 396쪽

중국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서 소련이 쥐고 있는 패권에 도전하려 했다. 임신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한 결혼을 후회하는 신부처럼 마오쩌둥은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있었다. 모스크바가 중국에서 소련의 기술과 자금, 1만 명의 고문들을 철수한 후인 1960년 7월에 분노에 찬 상태로 상호 동의 아래 이혼 판결이 내려졌다. …… 마오쩌둥은 소련 지도자들을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했다. - 497쪽

억압과 폭력은 공산주의 체제를 받쳐주는 버팀목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냉정하게 분석적이고 단호하게 무자비해야 했다. 그들은 무한정 억압을 실행함으로써 책무를 완수해야 했다. - 292쪽

오래 지속된 공산주의 체제들의 공통점은 억압적인 성격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공산주의 체제는 경쟁 정당과 반체제 인사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고 사법과 언론, 문화와 민족의 자율성을 철폐했다. 외부 세계의 영향력에 맞서 사회를 철저히 고립시켰고 기존의 환경과 관습을 거의 존중하지 않았다.
억압은 공산주의 체제의 부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억압이 없었다면 공산주의 체제는 국내외의 위기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쿠바의 카스트로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다.

(동유럽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러니까 중국과 쿠바에서 통치자들은 소련에 복종할 의무를 강요받지 않았다. …… 하지만 그들도 소련식 모델을 채택했는데, 그러지 않을 경우 인민의 불만과 저항이 맹렬히 쏟아져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 737쪽

반면 동유럽에 대해 억압을 완화한 흐루쇼프의 개혁은 1956년에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한 헝가리 봉기를 불러왔다. 소련의 침공이 없었더라면 헝가리에서 공산주의 체제 자체가 무너졌을 것이다. 스스로 동유럽에 대한 선의에서 개혁을 실시하고 있다고 믿었던 흐루쇼프는 자기 손으로 봉기를 진압하는 악몽을 겪어야 했다. 1991년의 소련 해체도 고르바초프가 실시한 급진적인 자유화와 민주화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공산주의를 개혁하는 어떤 과정도 결국 공산주의를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변모시키는 운동으로 전화하는 것 같다”(740쪽)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고르바초프의 몰락을 슬퍼하는 소련 시민은 많지 않았다. 그의 정책은 경제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국가를 박살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떤 자비도 보여주지 않았다.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중상할 기회를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므로 이런 태도는 옹졸한 것이었다. …… 그러나 고르바초프에 대한 평결을 제대로 내리려면 그가 소련 체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소련이 개혁된 뒤에도 여전히 공산주의로 남을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었다. 고르바초프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레닌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었지만, 그런 레닌은 역사상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 710쪽

불복종과 혼란은 공산주의라는 기계를 돌리는 기름이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현대 마르크스주의의 아버지들인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두 눈으로 그 현상들이 막 생겨나고 있음을 똑똑히 본 레닌을 좌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 23쪽

하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사회가 완벽하게 통제되었어도 체제가 유지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완벽한’ 전체주의는 인민들?중간 관리에서 국가에 고용된 공장 노동자에 이르는?이 협조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동기를 제공할 수 없다. 인민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무시해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23쪽) 게다가 통치자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친분 관계와 민족적 전통에 의지해야 했다. 혁명은 반혁명적 요소와 혁명 이전의 유산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집권한 공산주의는 도처에서 문제가 있었다. 공산주의는 자신의 목적에 대한 사회적 분노나 무관심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 또 혁명 전의 문화를 완전히 근절하지도 못했다. 종교를 탄압했지만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공산주의의 노동 규율은 대체로 엉망이었다. 정점에 위치한 최고 지도부 아래에서 공산주의 질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도의 불복종과 혼란에 적응해야 했다. 그 질서 아래에는 피후견 그룹들과 신뢰할 수 없는 정보 메커니즘이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현상들이 전체주의라는 기계의 먼지가 아니라 기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체제 전체가 망가져서 더는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 22∼23쪽

사람들은 해고되지 않을 것을 알고 빈둥거렸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어떤 성실성도 보여주지 않았다. 회사에서 물건을 훔쳐 부업으로 불법 판매했다. 친구들은 국가 정책을 비웃으면서 서로 편리를 봐주었다. 후견-피후견 관계가 체제 전역에 퍼졌다. - 250쪽

국가의 식량 조달 할당량에 시달리던 집단 농장 관리자들은 농민들이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법률로 허용된 것보다 더 넓은 땅이 농가에 할당되는 경향이 있었다.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서 법률이 규정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축을 사적으로 보유했다. - 463쪽

체제가 통치자를 괴물로 만들었다
지도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들을 괴물처럼 행동하게 만든 것은 공산주의 체제였다. - 307쪽

갓 태어난 공산 국가는 국내 반혁명 세력의 반발과 비(非)공산 강대국의 무력 개입이라는 두 가지 위협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10월혁명으로 러시아를 공산화한 볼셰비키는 옛 황실 질서를 옹호하는 백군뿐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 심지어 볼셰비키의 군대인 붉은 군대 내부의 반란에 무력으로 맞서야 했다. “그들(볼셰비키)은 국가 폭력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반체제 세력에 대응했다.”(126쪽) 소련은 1920년대 내내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열강의 침입에 대비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을 견제하고자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군비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거나 반공산주의 봉기를 진압하고자 군사적 지출을 감수하기도 했다. 특히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면 소련의 지원이 절실했다. “그들 모두는 소련이 군사 개입을 보장하지 않으면 쓰러질 판이었다.”(491쪽) 소련뿐 아니라 한국, 중국, 베트남, 그리스,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등 수많은 나라에서도 공산주의 혁명 전후로 내전이 일어났고, 체제에 대한 외국의 간섭에 저항해야 했다.
체제를 지키고자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면서 사람들의 생활 형편이 나빠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중앙이 통제하는 경직된 경제는 대중의 물질적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인민의 불만이 커져만 갔다. 공산주의의 이상에서 국경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세계는 국경 너머에 엄연히 존재했고, 공산 국가의 인민들은 외국 사회가 누리는 물질적·사회적 이점을 알았을 때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사생활을 즐기고 싶은 바람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개인과 가정에 공산주의가 간섭해 온 역사는 이러한 열망을 강화했다. 게다가 거래로 이윤을 얻는다는 관념도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740쪽)
이를테면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주하는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을 설치했으나 탈주 시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장대높이뛰기를 배워서 사다리 없이 장벽을 넘으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정교한 터널도 팠다.”(556쪽) 통치자들은 불만을 해소할 능력이 없었고, 해소하는 것보다 억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 세계 공산 국가의 통치자들이 비슷하게 생각했다.

오, 레닌이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면. 부하린이 좀 더 훌륭한 정치가여서 스탈린의 집권을 막았더라면. 러시아의 경제와 문화가 그렇게 후진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은 반응은 핵심을 놓친 것이다. 완벽한 사회는 그 사회를 건설하려면 완벽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전제 위에서는 건설될 수가 없다. 공산주의는 그 성격상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 도전을 감행한다. 자본가들은 필연적으로 도전에 응한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하여 어느 지역의 어떤 공산주의 프로젝트도 국내외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지탱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규모 억압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어려움은 궁극적으로 정치·사회·경제적 비상 상황을 낳을 것이다. - 739∼740쪽

예를 들어 중국의 마오쩌둥은 집약적인 경제 발전을 꾀하는 대약진 운동을 벌였으나 잘못된 정책으로 3천만 명이 굶어 죽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 몫의 배급을 계속 수령하려고 죽음을 비밀에 부쳤다. 부모들은 부패해 가는 자녀의 시신과 함께 생활했다. 사람 고기를 먹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했다.”(517쪽)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수세에 몰린 마오쩌둥은 마오주의라는 극단적인 단일 이데올로기를 전 사회에 철저히 강제하는 문화대혁명을 추진해 정적들을 처단하고 사회를 가혹하게 통제했다.

국가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다시 사형을 집행했다. 홍위병은 때때로 희생자들을 사슬로 묶어서 시가지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닌 뒤 거리에서 재판을 했다. 극단적인 경우 피고는 무릎을 꿇은 채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기 전에 자백을 강요받곤 했다. 죽은 자의 가족들에게 총알값 청구서를 보내는 일이 널리 행해지던 관례였다. - 526쪽

마오쩌둥이 특별히 악랄한 인물이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저자는 개인이 아니라 체제가 문제였다고 말한다. “유일 정당·유일 이데올로기 국가를 수립하는 일은 지도자 자신이 권력을 잡기 전에 억압적 조치에 이끌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혹한 자체 논리를 지니게 되었다. 지도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들을 괴물처럼 행동하게 만든 것은 공산주의 체제였다.”(307쪽)

혁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반혁명과도 손잡아야 하는가?
그것은 세기의 외교적 센세이션이었다. 5월까지 (소련공산당) 외무인민위원이었던 막심 리트비노프는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정말로 독일과 손을 잡을 생각이란 말이오?” - 336∼337쪽

공산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 열강은 적이었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은 계급 연대의 이름으로 사라져야 할 과거의 유산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신념의 완벽한 실천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조차 “다른 열강들과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세계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25쪽)
공산주의가 벌인 가장 극적인 타협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스탈린과 히틀러가 체결한 독·소 불가침 조약, 그리고 히틀러의 조약 파기 이후 스탈린이 영국, 미국과 연합함으로써 보인 태도의 일대 전환이었을 것이다. 히틀러의 소련 침공을 막기 위해 스탈린은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략을 묵인하는 외교적 ‘거래’를 했다. 나치가 집권하면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혁명적 정세를 조성할 것”(270쪽)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히틀러가 약속을 깨고 소련을 공격하자 스탈린은 이번엔 영국, 미국과 기꺼이 손잡았다. 체제를 지킬 수 있다면 파트너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연합군에 가담하여 나치에 대적하면서 소련은 “세계 각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가치가 있는 나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349쪽) 미국 사업가들이 소련과 적극적으로 교역을 시도했다. 자본주의 국가 영국의 한복판에 레닌 동상이 세워졌다. 공산주의의 타협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산주의가 세계에서 인정받을 커다란 기회였다.

소련을 위해 기금 마련 콘서트가 열렸고, 런던의 펜턴빌에서 좀 떨어진 퍼시 서커스에 있던 레닌의 예전 숙소 근처에 레닌 상이 세워졌다. (이것은 그리 성공적인 발상이 아니었다. 반공산주의 활동가들이 이 기념물을 자꾸 파괴했고, 런던 경찰청은 얼마 되지도 않는 인력을 그 동상을 지키는 데 돌려야 했다.) …… 처칠과 루스벨트는 방송 연설에서 스탈린과 붉은 군대에 대한 감사를 정기적으로 표명했다. 연합군은 착한 늙은 ‘조(Joe) 아저씨’(스탈린의 별명)를 찬미하면서 전쟁터로 갔다. - 345∼346쪽

왜 공산주의는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토록 매력적이었나?
미국의 공산주의자들은 흑인에게 다가가는 데 그치지 않고 남부에 그들을 위한 독립적인 공화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유포했다. …… 어느 누구도 어떻게 미국에서 제2차 내전을 피할 것인지를 질문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것은 공산당이 흑인 당원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 198쪽

빈곤과 억압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공산주의는 어디서나 뿌리내렸다. 기존 권력의 부당함에 맞서고자 하는 갖가지 움직임이 공산주의로 수렴되었다. 공산주의가 지닌 국제주의적 이상은 구체적인 민족적·사회적·역사적 배경의 차이를 막론하고 모든 저항하는 약자들을 매료했다. 공산주의 지도부에는 유대인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많은 나라에서 유대인들은 가난과 차별에 시달렸고 민족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에 이끌렸다. 인도 공산주의자들은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를 만났다. 인도 공산주의 지도자 남부디리파드는 간디의 운동이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하다고 느꼈을 때 공산주의에 빠져들었다.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공산주의에 의지했다. 베트남 독립을 이끈 호찌민은 체 게바라와 더불어 반미 운동을 벌이던 1960년대 유럽 젊은이들의 영웅이 되었다. 카스트로의 혁명 쿠바 정부는 미국의 위협에 맞서 소련을 파트너로 삼으면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다. 소련의 지원이 멈춘 뒤에도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로 남았다.

기존 질서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소수 민족이 있는 곳마다 공산주의 조직가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중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주목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인도의 공산주의자 마나벤드라 나트 로이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갈색 인종과 황인종이 거만한 제국주의자가 아니라 식민주의의 해악을 교정하고자 하는 친구이자 동지인 백인들을 (만나는)” 경험을 한 대회에 참석했다고 회고한다. - 221쪽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공산주의에 매료되는 이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소련 붕괴 이전 미국 흑인들이 공산주의에서 인종 차별과 싸울 기반을 발견했던 것처럼, 소련 붕괴 이후 네팔에서는 군주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마오쩌둥의 공산주의를 사상적 무기로 받아들였다. 비록 미국공산당의 흑인 당원들은 “1929년에 광부 당원들이 구제 기금 마련을 위해 개최한 무도회에 여전히 입장할 수 없었”(198쪽)고 “네팔의 마오주의자들은 톈안먼 광장에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화를 걸어놓은 중국 지도자들에게 냉대를 당했”(725∼726쪽)지만, 그런 모순적 현실과 상관없이 공산주의는 그들이 품은 자유와 해방의 꿈에 뜨겁게 불을 붙였다.

지난날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치하에서 저질러졌던 횡포가 언론에 폭로되었지만 소규모 단체들의 숭배를 멈추지는 못했다. 공산주의 신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문화적 후진성에 맞서 투쟁한다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사적 이미지였다. 신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다른 정치·사회·경제적 현실이 이루어지기를 원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공산주의 운동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토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 726쪽

스탈린은 죽었고 소련은 붕괴했지만 공산주의를 꽃피운 빈곤과 억압의 토양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운동이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산주의 자체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공산주의는 마지막 공산주의 국가가 사라졌을 때에도 오랫동안 사후의 삶을 누릴 것이다.”(745쪽) 공산주의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20세기 공산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분석이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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