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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열전, 황제 - 제위의 찬란한 유혹, 중국 황실의 2천년 투쟁사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중국사 열전, 황제 - 제위의 찬란한 유혹, 중국 황실의 2천년 투쟁사

샹관핑 지음, 차효진 옮김
2008년 01월 20일 출간 정가 20,000원 페이지 492 Page

서문

1. 선정을 베푼 제왕들
- 부모형제라도 공정하게 법을 시행한 제왕
- 간언을 잘 받아들인 제왕
- 근검절약을 실천한 제왕
- 탐관오리를 엄히 처벌한 제왕
- 사람을 잘 알아보고 쓰는 제왕

2. 놀기에 바쁜 제왕
- 술을 목숨처럼 여기는 제왕
- 천성이 잔인한 제왕
- 사치가 끝이 없는 제왕
- 궁녀가 많았던 제왕
- 방탕한 생활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제왕
- 장례가 호화스러운 제왕
- 놀기에 정신 팔려 본업을 잊어버린 제왕

3. 제왕의 운명
- 가장 오래 재임한 제왕
- 재임이 짧았던 제왕
- 노년에 즉위한 제왕
- 어릴 때 즉위한 제왕
- 폐위되어 권좌에서 축출된 제왕
- 선황제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른 제왕
- 포로가 된 제왕
- 나라가 망하여 투항하는 제왕
- 행방을 알 수 없는 제왕

4. 엉뚱하게 죽은 제왕들
- 후비에게 죽은 제왕
- 친척과 환관에 의해 죽은 제왕
- 정변에 놀라 죽은 제왕
- 독살로 죽은 제왕
- 강요에 못 이겨 자살한 제왕
- 선약으로 죽음에 이른 제왕

후기
역대 중국황제 연표

출처 : 알라딘 
내용이 없습니다.
중국 역대 황제 583명에 대한 철저한 고증으로 성스러운 제왕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한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지난 수천 년간의 중국 역사에서 눈부시게 매혹적인 제왕의 권좌는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잔인한 암투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 황제의 권력이 컸던 만큼, 그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권력다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했다. 권신들이나 무장 세력들은 제위를 찬탈하기 위해 수많은 간계를 획책하였다. 권력을 탐한 무리 중에는 황후나 귀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비(后妃)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숨어 있다가 시기가 무르익으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일을 터트렸다. 이 때문에 태후나 왕후, 비빈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죽음에 이른 황제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다.
제왕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은 모두 격렬하고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축출되어 폐위된 황제들이 적지 않듯이 선대 황제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른 황제들 역시 그만큼 존재한다. 황제를 폐위시키고 왕조를 바꾸어 스스로 제위에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수 없이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제위에 오른 황제 중에는 심지어 몇 대에 걸친 긴 책략을 펼치고 나서야 비로소 강산을 빼앗을 수 있었다.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서진(西晉) 왕조와 우문각(宇文覺)이 건립한 북주(北周) 왕조가 바로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어도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개국할 때에는 운이 좋았던 황제들이 여럿 있었으나, 어렵게 권좌에 앉고 난 후에는 무능하고 잔혹한 성정을 드러내거나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막다른 길로 몰려 권좌를 노리는 권신과 왕족들에 의해 축출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군주에게는 국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봉건 왕조의 절대 법칙에 따라 중국의 황제는 무한대의 권력과 향락을 추구하며 강력한 권력을 누렸다. 황제는 한 사람이 천하를 다스리되 천하가 그를 위해 봉양하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과 구족(九族)의 목숨을 내걸고 그 자리를 다투었다. 이러한 강렬한 유혹은 2천년 동안 중국의 황실 내부에서 끊임없이 벌어졌고, 그만큼 왕조의 교체는 잦았다.
제왕의 거처는 높은 벽과 두꺼운 문, 삼엄한 경계를 펴는 금지(禁地)로 잘 알려져 있어 지금까지 밖으로 폭로된 게 매우 적었다. 간혹 밖으로 누설된 것조차도 훼손되거나 결여되어 있어 그 진실이 완전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제왕들은 무제한으로 궁녀를 들여 비빈(妃嬪)들의 처소를 채웠고, 황궁 안은 호사스러움을 넘어 사치와 음란함이 극에 달했다. 그들의 위세가 극에 달해 있을 때에는 그들의 한마디에 하늘을 무너지게도 할 수 있었으나, 때로는 후비(后妃)나 형제, 친척, 권신 때문에 갖은 모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제위의 찬란한 유혹은 내전과 정변을 끊임없이 일으켰고, 황궁에는 도처에 음모와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황제에 대한 구속과 감독이 적었던 왕조시대에 절제를 몰라 주색에 빠지고, 심지어 근친상간을 자행하는 것은 대다수의 제왕들의 행태 중 하나였다. 유사 이래로, 향락과 여색을 탐하지 않은 제왕은 지극히 적었다. 나라의 주인이었던 제왕의 입장에서 볼 때 천하에 차지하지 못할 여자는 없었다. 어느 황제의 “짐이 바라는 바가 있는데 어느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라는 말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제왕들이 여성에 대한 사악한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치심도 잊고 근친상간까지 저질렀다. 실로 그 죄행이 하늘에 닿았고, 터무니없기가 금수에 다름 아니었다.
사치스럽고 황음(荒淫)에 가득 찬 생활을 만족시키기 위해 황제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천하의 재물을 모아 쾌락을 즐기는 데 사용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구하기 어렵다는 것도 그들이 원하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했고, 또 즐거움과 쾌락을 주는 것이면 얼마의 재물이 들던 간에 모두 충족시켜야만 했다. 의식주에서 진기한 보물이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집기들까지 그들은 천하의 모든 진귀한 물건들을 손쉽게 수중에 넣었다.
역사를 살펴보건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황제들은 모두 탐욕이 넘치고 사치스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황제들이 등극하고 나면 맨 먼저 이러한 일들에 착수하였는데, 이들의 후궁은 육욕의 범람하는 장소였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소를 지배한 제왕은 금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음마색귀(淫魔色鬼)들이었다. 나라를 이러한 ‘천하의 골수를 수탈하여 자기 한사람의 육욕을 채운’ 색마들에게 다스리게 하였으니 실로 불행한 시대였다!
또한 황제의 혀를 만족시키기 위해 명나라의 주고치(朱高熾) 치세에는 궁중 요리사만 6천3백여 명이나 되었으며, 주견심(朱見深)대에 이르러서는 궁궐의 식료품을 사는데 발행한 약속어음만 40만 냥에 이르렀다. 청나라의 건륭제(乾隆帝) 홍리(弘曆)는 음식을 특히 중시하였는데, 그의 아침식사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식이 올라왔으나 젓가락을 둘데가 없다고 불평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풍성한 아침도 동치제(同治帝) 재순(載淳)과 비교하면 그저 평범한 정도였다고 한다.

불사의 선약을 구하다 안 되면 지하에서 영화를 이어가리라

불로장생의 선약은 없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제왕들은 술사들의 속임수를 믿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어내라고 우기며 그것을 장기적으로 복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당나라와 명나라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이 때문에 선약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제왕들은 이 두 왕조에 집중되어 있다.
21명의 당나라 황제 중에 선약으로 죽은 사람만 해도 다섯 명이나 된다. 심지어 총명함을 널리 떨쳤던 태종 이세민조차도 죽기 한 해 전에 그의 수명을 늘리는 선약을 만들라고 어명을 내렸을 정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술사들이 만들어낸 수명을 늘리는 선약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과 같은’ 황제들은 자신의 영화를 지하세계에서 연장시키고 했다. 능을 건설하는 데는 물론이고 장례절차에 있어서의 사치스러움, 잔혹함, 비정함, 그리고 군대를 파견하여 자신의 능을 지키는데 지출되는 비용들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무한대의 권력을 움켜쥐고 있었던 이기적이고 탐욕에 가득 찬 황제들은 생전과 사후의 즐거움을 위해 백성의 굶주림이나 원성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년 동안 뼈는 묻을 수 있을지언정 그 수치스러운 행동은 묻을 수 없듯, 그들이 긴 잠에 빠져 모두 썩어 흙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우뚝 솟아 있는 황량한 무덤과 부러진 비석들은 악행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들이 죽은 후에도 셀 수 없는 재물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추악함뿐이었던 것이다. 잔존해 있는 왕릉의 폐허는 어느 황제 개인의 무덤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무덤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재위기간 54년이나 되는 한무제는 유철(劉徹)은 즉위 이듬해 자신을 능묘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장장 50여년의 축조를 거쳤기 완성되는데, 그 규모와 무덤 안에 들어가는 부장품들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봉분에 심은 나무는 그가 죽을 때에는 이미 아름드리가 되었으며 지하궁전내의 금은보석은 너무 많아서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북송(北宋) 왕조의 왕릉 역시 그 규모의 방대함과 천문학적 비용으로 세간을 놀라게 할 만하다.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의 기록에 따르면, 조항(趙恒)의 영정릉(永定陵)에 투입된 비용은 당시 발행한 전체 화폐 3백만 관의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였다. 인종(仁宗) 조정(趙禎)의 영소릉(永昭陵) 역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는데, 보병 4만 6천 7백 명을 징발하였고 축조 비용으로 쓰기 위해 삼사(三司)에 명하여 돈 150만 관과 비단 250만 필, 은자 50만 냥을 국고에서 갖다 썼다.《송사宋史 122권》 이는 당시 한 해 주조되는 화폐의 절반 이상의 가치에 해당되었다.
가장 잔인했던 것은 생전에 지상 최고의 쾌락을 누렸던 황제들이 죽어서까지 이를 계속하고 싶은 욕심에 억지로 무고한 아녀자들을 순장시켜 저승에서의 노리개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우둔한 군주가 제위에 오를 때마다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려움을 모르던 황제의 친척과 외척들은 항상 위를 기만하고 아래를 능멸하며 나쁜 짓을 일삼았다. 그 결과 왕조에게 끊임없는 분란과 화를 가져왔고, 심지어 제왕 본인에게도 커다란 비극을 초래하였다. 또한 황제와 결탁한 환관들은 정직한 관리들을 제거하고 공개적으로 매관매직을 자행했다. 심지어 관직이 외상 매매도 가능하였는데, 임명된 후에는 배로 변제해야만 했기에 그들의 수탈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으기 위해 각 지방의 관리들을 수시로 교체하는 방법까지 사용했다고 하니 계속해서 뇌물을 바칠 수 없는 관리들은 그만두어야 했다.
‘절약은 위대한 실천이 될 수 있고, 사치는 망국의 지름길이다. 황제가 만일 천명(天命)만을 의지해 왕조 창건의 고난과 검약을 소홀히 한 채 궐 담에 조각을 새겨 넣는 등 사치스러운 풍조를 따르고 그 족함을 모르게 되면 백성들은 임금의 덕은 보지 못한 채 노역의 소식만 듣게 된다. 이런 일이 계속 되면 필시 재난이 생기고, 재난이 생기면 환란이 발생하니, 환란의 와중에서 황제의 일신이 무사한 경우는 드문 법이다.《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이세민의 생각을 실천한 사람은 그 수많은 황제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송사宋史》의 편찬인은 북송 멸망의 원인을 대하여 “휘종이 나라를 잃은 연유를 고찰해 보면 진나라의 사마충(司馬衷)처럼 우둔해서도 아니고, 오나라의 손호(孫皓)처럼 폭군이기 때문도 아니며, 또한 사마(司馬)씨가 위조(魏曹)의 왕위를 찬탈한 것처럼 자신의 잔꾀와 얕은 총명함만 믿고 충신을 배척하고 간신과 아첨꾼들만 가까이 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신하 채경(蔡京)의 알량한 아첨에 현혹되어 사치스럽고 황음무도한 욕망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임금이 즐거움에 빠져 그 뜻을 잃고 욕망만 추구하면 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진단했으니 실로 가슴에 와 닿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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