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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 서다 - 2천 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
국내도서 >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대륙에 서다 - 2천 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

최진열 지음
2010년 03월 04일 출간 정가 15,000원 페이지 392 Page

책머리에

1부 삼국시대 그리고 위진남북조 시대
01 고구려와 백제는 과연 중국을 지배했을까? / 최치원의 상태사시중장
02 북위를 움직인 고구려인 황후와 외척들 / 비운의 황제 고운

2부 남북국 시대 그리고 당나라 시대
01 당나라 전성기에 활약한 명장들 / 백제 유민 출신의 무장 사타충의
02 무위의 화와 고구려 유민들 / 환관이 된 고구려 유민들
03 안사의 난과 고구려 유민들의 분투 / 이회광과 안사의 난 이후의 정국
04 유학 열풍에 빠진 신라인들 / 김인문과 숙위 외교
05 해상왕 장보고와 골품제의 반항아들 / 당나라에서 활동한 신라인 기술자들

3부 고려 시대 그리고 송, 요, 금, 원나라 시대
01 거란 치하의 발해인 / 발해인의 독립운동
02 여진의 브레인으로 활약한 발해인들 / 금나라의 시조는 고령니?
03 몽골에 도취된 임금 / 이제현의 중국 여행
04 호가호위를 즐긴 사람들 / 기황후를 등에 없고 난을 일으킨 최유
05 몽골 제국을 뒤흔든 여성 / 명나라 영락제의 생모 공비

4부 조선 시대 그리고 명나라, 청나라 시대
01 조선 사대부와 중국 여행 / 요동의 조선인들
02 나라를 살린 역관 홍순언 / 중국 상인들을 울린 임상옥
03 조선인 출신 무장 이성량, 이여송 부자 / 우리나라의 역대 해외 파병
04 서구 문물에 취한 세자 / 청나라의 역관이 된 조선인들

맺음말
참고문헌
인명 색인

출처 : 알라딘 
저:최진열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동국대, 동덕여대, 경인교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고중세사와 북아시아사, 한국 고대사, 한중 관계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독서에 열중하는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초 군국제와 지방 통치책」「삼국 시대 천하 관념과 그 현실적 변용」「북위의 종족 정책」「수당 장안성과 방명」「중국 주변국이 수용한 ‘왕’의 이미지」 등이 있다. 『후한서 외국전 역주 하편』과 『삼국지 진서 외국전 역주』를 함께 번역했고 『비단길이 번영을 이끌다』(마주보는 세계사 교실2편)을 집필했다.

출처 : 예스24 
중국의 역대 역사서에서 발굴해낸 한반도 출신 인물들의 삶의 발자취!
동아시아 세계의 역동적이고 국경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역사의 장면들!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한국인의 열전(列傳)


『대륙에 서다: 2천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은 한나라에서 청나라 시대까지, 즉 고구려에서 조선 시대까지 지난 2천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중국과 인도, 중앙아시아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불굴의 한국인들을 엄선하여 엮은 열전(列傳)이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중국 대륙을 무대로 활약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껏 이들은 한국사와 중국사 모두에서 변방의 역사로 취급되어, 오랫동안 중국 역사서의 몇몇 페이지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최근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촉발된 한?중 역사전쟁으로 이들의 존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외국인에 대한 기록과 평가에 인색한 중국인들의 역사 서술 방식을 상기한다면, 중국의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할 만큼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이 옛 한국인들이 중국 대륙에서 겪었던 좌절과 고통, 역경과 영광은 마치 고선지 장군이 ‘세계의 지붕’ 힌두쿠시 산맥을 넘었던 것에 비길만했다. 저자 최진열 박사는 그동안 외면 받아왔던 역동적인 역사의 주인공들을 엄격한 고증을 거쳐 생생한 필치로 되살려 놓았다.

북위 황실과 몽골 제국의 중앙 정치를 뒤흔든 황후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호령하던 위대한 장군, 중국 한 복판에 독립 왕국을 세웠던 군벌, 백척간두의 조국을 구한 일개 역관(譯官)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 -황제, 황후, 군인, 유학생, 승려, 역관, 표류자, 인질로 끌려간 세자 등-을 만나며 동아시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우리 역사의 장대한 스펙터클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대륙에 서다』는 중국사 전공자가 오직 사료에 근거하여 발굴해낸 성과인 만큼, 그 정확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36장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지도 역시 역동적이고 트랜스내셔널한 동아시아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과연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까?

1980년대 재야 학계를 중심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 본토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한민족의 대륙 지배설’은 역사학계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강대한 민족사에 대한 대중적 열망과 결부되면서, 이러한 주장은 한반도에 국한되는 역사 서술을 넘어 북방 유목 민족의 역사까지 우리 민족사의 방계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논지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고대사의 권위자인 저자는 이러한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며 사료(史料)와 고고학적 증거에 근거하여 ‘대륙 지배설’의 실상을 밝힌다.

‘대륙 지배설’은 주요하게 고구려와 백제 두 가지 판본이 있다. 고구려의 사례로는 고구려 모본왕이 하북성과 산서성 일대를 침공하여 지배했다는 설과 광개토대왕이 지금의 북경 인근인 유주를 통치했다는 설이 있다. ‘백제의 요서 영유설’은 더욱 유명하다. 『남제서(南齊書)』「백제전」에 백제와 북위의 전쟁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경을 맞대지 않은 백제와 북위가 어떻게 직접 싸울 수 있었을까? 북위의 군대는 기병 중심이므로 바다를 건너지는 않았을 것이고, 백제도 당시에 적이었던 고구려 땅을 경유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즉 이 기록이 이치에 맞으려면, 백제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제서』에 따르면, 백제왕은 한술 더 떠서 자기 신하들을 산동성 일대의 태수로 임명해달라고 황제에게 요청하기까지 한다. 과연 백제가 중국 본토를 다스린 것이 사실일까? 저자는 여러 ‘대륙 지배설’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민족주의적 감정에 부화뇌동 하지 말고, 객관적인 자료와 증거를 가지고 신중히 판단하자고 말한다.


중국의 황후가 된 고구려 여인과 치열한 궁정 암투: 고조용, 고영

우리 선조들 중에도 중국 황후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고조영과 고영이다. 고구려에서 북위로 이주한 고조용은 북위 황제(효문제)의 후궁이었으며 비록 그녀가 죽은 후였지만, 그의 아들이 황제(선문제)가 되자 황후로 추존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후의 수렴청정과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태자의 친어머니를 살해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자귀모사(子貴母死)”라고 한다. 말 그대로 “아들이 귀해지면 어머니는 죽는다.”는 뜻이다. 고구려 여인 고조용은 아들이 태자로 책봉되면서 이 관습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고구려 여인이자 고조용의 조카인 고영은 선무제(고조용의 아들)의 황후가 되었다. 자귀모사의 관례에도 불구하고 고씨 가문은 북위 황실과 복잡한 겹사돈 관계를 맺어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태자로 책봉된 효명제는 고영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고영은 자귀모사의 관행을 내세워 태자의 친어머니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태자의 친어머니가 황제의 친위대와 연합하여 먼저 거사를 일으켜 상황을 급반전시켰다. 고씨 가문은 숙청되었고 고영은 황후에서 강제로 쫓겨나 비구니로 전락했으며 결국 황제의 친어머니의 지시로 살해되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독자들은 오호십육국 시대에 고구려인이면서 중국 황제에까지 오른 고운, 원나라의 중앙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고려인 기황후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전성기의 명장들: 고선지, 흑치상지

고선지와 흑치상지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 출신이지만 당나라에서 군인으로 활동하다가 불멸의 존재가 된 사람들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유민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자 당나라는 이들을 대륙 서쪽의 인구 희박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곧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아 제국 변방의 수비에 차출되어 두각을 나타내었다. 로마 제국이 게르만 출신 군인들을 용병으로 썼듯이, 당나라도 유목 민족을 군대로 편성하고 그 우두머리를 번장(番將)으로 삼아 변방의 수비를 맡겼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토번(지금의 티벳)으로부터 수도 장안을 방어할 필요성이 컸으며, 유라시아 대륙의 교역로인 비단길을 장악하기 위해 서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 중에는 당나라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흑치상지는 토번, 돌궐 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다. 원래 그는 백제 부흥운동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러나 백제인 내부의 분열과 당나라의 회유 속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부흥운동을 배신하고 같은 백제인들에게 칼날을 돌려야 했다. 전장을 누비며 큰 공을 세웠던 흑치상지는 결국 최초의 여성 황제인 무측천이 주도한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고선지 역시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서역에서 군 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고선지는 “개의 창자를 먹는 고려놈(高麗奴)아!”라는 모욕을 듣고, 각종 모함을 당하면서도 중앙아시아 일대를 평정하는 대업적을 이루었다. 세계사에 보기 드문 명장이었으나 고선지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말았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장안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고선지는 결국 모함으로 억울하게 희생되고 말았던 것이다.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던 신라인들: 장보고

당나라에서 용병으로 일하던 장보고가 당나라 해적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라인들을 목격한 후 완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하여 해적 소탕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장보고는 서해와 남해 해상의 교통망을 완전히 장악하고 신라, 당, 일본을 잇는 삼각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왜 그는 처음에 신라 군인이 아닌 당나라의 용병이었던 것일까? 장보고는 6두품 출신이었다. 야심있고 뛰어난 청년들은 골품제의 벽에 부딪혀 신라에서는 꿈을 펼칠 수가 없었다. 당나라에서 장수로 이름을 날린 설계두와 장보고의 친구인 정년 모두 6두품 출신이었다. 그들은 폐쇄적인 신라 사회를 버리고 당나라에서 미래를 보았던 것이다.

풍운아 장보고의 일대기는 당시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신라인들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신라인들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세계 정상급이었으며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통해 신라, 당, 일본을 오가는 항로를 지배할 수 있었다. 중국의 동해안의 수많은 항구에서 신라인 집단 거주지 신라방(新羅坊)이 자치권과 치외법권을 누리며 들어섰다. 상대적으로 후진적이었던 일본 선단에서는 ‘신라신(新羅神)’을 항해의 수호신으로 모셨고, 심지어 9세기에는 신라 해적들이 동해를 주름잡고 일본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지만 흉포한 왜구(倭寇)가 존재하기 전에 ‘신라구(新羅寇)’가 먼저 있었던 것이다.

조선을 구한 역관: 홍순언

홍순언은 서얼 출신 역관으로 사신단의 통역을 맡아 여러 차례 조선과 명나라 사이를 오갔다. 그는 당시 조선의 지배층도 하기 어려웠던 두 가지 큰일을 일개 역관의 몸으로 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의 파병 요청이다. 종계변무는 당시 조선의 중대한 외교 현안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을 시해하고 조선을 창건했다는 명나라의 기록에 대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바꾸어 달라고 탄원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홍순언이 중국으로 파견되었을 때 어려운 처지에 처한 한 중국 여인을 불쌍히 여겨 수중에 있던 3백 금(金)을 주고 말았다. 이 돈은 관청에서 빌린 돈으로 중국에서 물건을 사다가 조선에 되파는 형태의 장사에 사용될 자금이었다. 따라서 이 돈을 갚지 못한 홍순언은 공금 횡령죄로 옥에 갇히게 된다. 당시 선조 임금은 수차례 사신단 파견에도 불구하고 종계변무 문제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격노하며 이번에도 협상에 성공하지 못하면 수석 역관의 목을 치겠다고 교지를 내렸다. 목숨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역관들은 옥에 있는 홍순언을 찾아가 빚을 대신 갚아 줄테니 자기들 대신 명나라로 가서 종계변무를 해결해달라고 청했다. 1584년 명나라에 도착한 홍순언은 명 조정의 고위 관료인 석성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일전에 홍순언이 도와주었던 여인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석성은 종계변무를 처리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구원병을 요청하러 간 홍순언을 병부상서(오늘날의 국방장관)의 위치에서 크게 도와주어 결초보은 하였다. 물론 명나라의 파병은 중요한 전략적 결정이었겠지만, 실로 홍순언은 조선의 지배 엘리트들이 해내지 못한 중요한 외교 현안들을 일개 역관의 몸으로 해냈던 것이다.

명나라의 조선인 출신 대일전선 총사령관: 이여송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장군이었던 이여송은 여러 사극을 통해 ‘열심히 싸우지 않고 주색에 빠져있던 무능한 장수’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는 아버지 이성량과 함께 명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이여송은 만력삼대정(萬曆三大征)으로 불리는 보하이의 난, 임진왜란, 양응용의 난 가운데 두 번의 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몽골, 타타르, 여진과의 전투에서 수차례 빛나는 전승을 올렸고,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명나라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4만3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위대한 명장 가문이 사실은 선대에 중국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명나라 대일전선 사령관이었던 이여송의 목표는 중국 본토로 진군하는 왜군을 막는 것이었지 조선의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에 수동적으로 대응했고, 그의 부하들은 약탈을 일삼았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이성량은 조선을 정벌하여 직할 통치할 것을 황제에게 제안했다. 조선이 이러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견제하고자 했던 명나라의 다른 대신들 덕분이었다. 이여송 부자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명나라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여송은 임진왜란 후에도 여진과 전쟁을 치렀고, 죽은 후에는 황제 만력제에 의해 영원백(寧遠伯)에 봉해졌다.

서구 문물에 취한 준비된 군주의 죽음: 소현세자

병자호란의 치욕, 남한산성에서 항복한 조선은 세자를 인질로 보내야 했다. 26살의 소현세자는 스스로 인질이 되어 당시 청나라의 수도였던 심양으로 끌려갔다. 심양에서 세자 일행은 경제적 곤궁에 시달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소현세자는 관례를 깨고 몰래 상행위를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청나라가 끝없이 요구하는 뇌물과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을 석방하는데 드는 비용을 충당했다. 뿐만 아니라 소현세자는 조선 조정과 청나라 사이에서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국제 정세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얻었고, 청나라의 강성함을 몸소 목격하면서 조선의 준비된 군주으로서의 면모를 다져갔다.

북경으로 몸을 옮긴 소현세자는 독일 선교사인 아담 샬을 만나 서양의 문물과 학문을 접하게 된다. 그는 서양의 과학과 기술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이를 조선에 도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소현세자가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인조와 서인 정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친명반청(親明反淸) 노선과 성리학 지상주의에 갇혀 있었던 조선의 지배층은 오랫동안 청나라에서 체류한 세자를 믿지 못했으며, 세자가 도입하고자 했던 서양의 문물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졌다. 그들은 국제 정세에 대한 세자의 더욱 넓은 시야를 이해할 수 없었고 청나라를 무조건 적대시할 수 없다는 세자의 견해를 거부했다. 심지어 인조는 오래전부터 소현세자가 청나라를 등에 업고 자신을 폐위시킬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마침내 소현세자는 독살을 의심케하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세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조선은 더 밝을 수도 있었던 미래를 함께 상실해버렸던 것이다.

선조들의 고난과 역경의 파노라마를 통해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다.

2천년이라는 지난한 세월동안 중국사와 한국사를 넘나들었던 수많은 인물들이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오래된 사서의 한 페이지에 잠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들, 이역만리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위업을 성취한 사람에서부터 일신의 안위를 위해 조국을 판 사람까지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던, 때로는 비극적이고 때로는 희극적이었던 선조들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복원하고자하는 시도이다. 그들 모두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는 주로 이민족이 대륙을 정복했던 시기와 코스모폴리탄 제국이 성립했던 당나라와 원나라 때였다. 명나라 때부터 중국은 쇄국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한?중?일 모두 쇄국으로 돌아간 시기여서 선조들의 국제적인 활동 역시 눈에 띄게 많지 않았다. 또 중국이 분열했던 시기나 청나라를 제외한 이민족 왕조에서는 옛 한국인들이 관직과 군대 등의 분야로 쉽게 진출할 수 있었지만, 한족 왕조의 세력이 강력하던 시기에는 이주와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국제적으로 활동했던 선조들과 역동적인 동아시아 세계를 또 다른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에서 이루어졌던 역대 해외 파병의 사례들도 다루고 있어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반면교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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