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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브누아트 그루 지음, 백선희 옮김
2014년 09월 14일 출간 정가 12,000원 페이지 192 Page

해제 연단과 단두대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증명한 인간 _ 정희진

최초의 근대적 페미니스트 올랭프 드 구주

올랭프 드 구주의 정치적 글들
한 여성 시민이 쓴 민중에게 보내는 편지 또는 애국 기금 계획
「민중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여성 시민이 쓴 애국적인 고찰
제2의 국립극장과 조산원 계획
흑인들에 관한 성찰
한 여성이 부르짖는 현자의 외침
네케르와 드 구주 부인의 망명 또는 드 구주 부인이 프랑스인과 네케르 씨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
왕비에게 헌정하는 여성 권리 선언
이혼의 권리와 사생아들의 공정한 지위를 위한 변론 오를레앙 공에게 보낸 발의안의 발췌본
귀부인들을 위한 서문 또는 여성의 초상
국민공회 의장 제롬 페티옹에게 보내는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해명에 대한 대답
혁명법정에 선 올랭프 드 구주의 변론

옮긴이의 말
올랭프 드 구주 연보

출처 : 알라딘 
내용이 없습니다.
연단과 단두대가 하나임을 증명한 인간
최초의 여성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에 관한 국내 첫 책


올랭프 드 구주는 말했다. “근본적인 견해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자신의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여성 참정권 역사에서 한 번쯤 거론되며 유수의 여성 정치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역시나 한 번쯤 언급되는 “화석화한 해석”으로만 존재해온 올랭프 드 구주.
“성녀거나 여왕이거나 총애받는 애첩이거나 화류계 여자거나, 아니면 사회면 기사나 유명한 사기극의 여주인공”(22쪽)이 아닌 이상 “여성들의 영웅적 행위나 지성, 재능이 아무리 탁월해도”(22쪽) 역사와 문학이 그 존재를 축소하고 봉인하고 망각했던 여성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마땅한 이가 그녀다.
“혁명의 세기가 끝내 내주지 않았던 연단에 이 책이 그녀를 세운 건 단지 그녀가 여성의 인권을 선언한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여서만은 아니다.”(‘옮긴이의 말’에서) 프랑스혁명기 격변의 역사 한가운데 자리했던 최초의 인간적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 지성의 상징적 존재 브누아트 그루가 올랭프 드 구주의 소설 같은 삶과 역사적 행보,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전문을 비롯 올랭프 드 구주의 정치적 글들을 발췌해 엮은, 올랭프 드 구주에 관한 국내 첫 책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해제에서 “이 책은 올랭프 드 구주의 발굴과 ‘선구자/희생자’ 담론을 넘어서, 역사가 성별의 개입으로 인해 얼마나 전복적일 수 있는지 새로운 이론의 근거가 되는 모델인 동시에 역사를 바꾼 사상으로 읽어야 한다. 수많은 올랭프 드 구주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이 책은 그 입구다”라고 말한다.

프랑스혁명 속 올랭프 드 구주,
“바스티유를 잡은 건 남자들, 왕을 잡은 건 여자들”


1789년 10월 5일 베르사유로 행진한 7000여 명의 성난 파리 여성들이 있었다. 그해 7월 14일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탈취하면서 프랑스혁명은 시작되었지만 실업이 늘고 빵값이 치솟아 파리는 굶주린 상태였다. 그때, 왕의 근위대 병사들이 혁명의 상징인 삼색휘장을 짓밟고 모독했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여자들이 격분해서 들고일어났다. 군중은 “빵을 달라” “혁명을 모독한 병사들을 벌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나절 만에 베르사유 궁에 이르렀다. 이튿날 루이 16세는 미뤄온 ‘인권 선언문’을 승인했고, 식량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그리고 ‘파리로!’라고 외치는 군중에 이끌려 왕실은 절대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을 완전히 버리고 파리로 향했다.
무장한 여자들이 왕실 마차를 호위했고, 앞장선 이들의 창끝에는 살해당한 경호병 두 명의 목이 내걸린 기이한 행렬이었다. 역사가 미슐레의 말처럼 “바스티유를 잡은 건 남자들이지만 왕을 잡은 건 여자들이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여자들은 발 벗고 행동에 나섰다. 나라 살림과 혁명의 대의에 보탬이 되도록 보석을 내놓았고, 주요 봉기 때마다 거리를 점령하고 남자들에게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여성 단체를 만들고 함께 모여 법률과 신문을 읽고 정치 문제를 토론했다.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국민군에 가담할 권리를, 삼색휘장을 달 권리를,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했다. 의결에 참여할 권리를 갖지 못하자 여자들은 청원서를 쓰고, 대중에게 허락된 국회 방청석을 차지하고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입법자들을 향해 목청을 높이는 이 여자들을 남자들은 “뜨개질하는 여자들”이라 불렀다. 이 말은 “뜨개질하던 양말을 손에 든 채 입에 거품을 물고 한꺼번에 고함쳐대는 서민 여자들”을 의미하는 멸시 어린 호칭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들의 맹렬한 지지를 업고 정권을 잡은 자코뱅 당은 그들을 철저히 배반했다. 지적 열등성과 생래적 한계 때문에 여성은 시민 자격에 미달한다고 선언했고, 여성 단체를 폐지했다. 여자가 길거리에서 다섯 명 이상 모이는 것조차 불법으로 규정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능동적으로 혁명에 가담하고도, 남자들이 겁낼 정도로 맹렬히 치맛바람을 일으킨 죄로 여자들은 조롱당했고, 길거리에서 벌거벗겨져 매를 맞고 정신병원에 보내지거나 목이 잘렸으며, 역사에서 일화처럼 축소되거나 지워졌다.

많은 영역, 특히 종교 영역에서 그토록 대담했던 프랑스혁명이 여성과 새로운 사회에서 여성이 맡을 역할에 대해서는 이토록 역행적인 발상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놀란다면 천진한 사람일 것이다. 모든 혁명의 역사가 가슴 아프게도 이 사실을 예시해준다.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하고도 한 번도 그 결실을 수확하지 못했고, 대개 질서와 전통으로 복귀하는 대가를 치렀다.
이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가장 열린 정신의 소유자들인 미라보, 탈레랑, 시에예스는 그들의 동반자인 여성들에게 국가 발전에서 터무니없이 하찮은 자리밖에 내주지 않았다. 실뱅 마레샬은 심지어 여자들이 읽는 법을 배우는 걸 금지하는 법률까지 제안했다. “그 대신 자연이 여자들에게 말하는 경이로운 재능을 갖고 태어나게 했잖은가.” 그에 앞선(그리고 그에 뒤이은)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세상이 여자들의 가정이고, 전 인류가 여자들의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의 평등권을 위해 그토록 열을 올렸던 지롱드 당원 브리소조차도 초등 교육 1, 2년이면 어린 딸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59~60쪽에서

이렇게 혁명에서 제외된 여성들, 시민에서 배제된 여성들 가운데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턱에 수염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고, 정치적 발언이 전면 금지당하던 이 공포정치 시대 로베스피에르를 질타하는 벽보를 붙일 만큼 대담했던 그녀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당당히 말했고, 2년 뒤 단두대에 올랐다.

소설 같은 삶을 살았고 대담한 정치적 행동을 했으며 시대를 대단히 앞선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역사 교과서에 기껏해야 한두 줄 정도 언급될 권리밖에 갖지 못했고, 그녀의 죽음에 바쳐진 추도사는 조소나 악의 어린 몇 마디로 축소되었다. 이 “무모한 여자”, 이 “정신 불안정한 여자”, 이 “용감한 미치광이”, 이 “화류계 여자”, 이 “남프랑스의 보바리”, 이 “정신 나간 주정뱅이”, 이 “부도덕한 괴물”은 결국 조국의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던 모든 여성 히스테리 환자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온갖 전통적인 여성 혐오의 환상들을 한 몸에 구현한 올랭프 드 구주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클로드 망스롱은 거침없이 말한다. “그녀는 우리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혁명가였다.”
-24~25쪽에서

모든 여성의 모든 권리,「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발표
가슴 뜨거운 정치적 여성,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다


올랭프 드 구주는 프랑스 시골 출신으로 가난 때문에 열여섯의 나이에 이른 결혼을 했고 홍수 때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를 둔 과부가 된다. 이후 결코 결혼하지 않는다. 파리로 상경한 후 죽은 남편의 이름을 쓰지 않고 본인이 지은 ‘올랭프 드 구주’라는 이름을 쓴다. 문맹이었으나 당대 극작가로 활동한다. 당시 연극은 예술 분야일 뿐 아니라 일종의 미디어 역할도 했는데, 그녀는 그 미디어를 잘 이용했다.
여성, 어린이, 노예, 가난한 이들 등,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혁명의 주변부에 머물며 제 목소리를 냈으며,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온갖 대의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입장을 가장 집요하게 대변했다. 상속의 평등권을 요구하고, 모든 직업을 여성에게 열어줄 것을 요구하고, 이혼의 합법화를 요구했다. 1791년 마침내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했으며, 그녀의 주장들은 일부 결실을 보았다. 1792년 9월 20일, 처음으로 부부의 이혼을 법이 허용했고, 아내를 남편의 후견에서 해방시켰다. 그러나 1793년 1월, 올랭프 드 구주는 왕의 처형에 반대하며 산악당이 독재를 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온건한 공화주의자들 편에 섰던 그녀는 혁명에 반대한다는 혐의로 1793년 7월 20일 체포, 11월 2일 사형 선고를 받고 이튿날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것은 사실상 여성이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죄’였다.
“우리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 그녀가 단지 최초의 페미니스트로만 머물지 않은 까닭은 여럿이다. 일부의 인권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을 부르짖다 단두대에 올랐던 그녀의 삶과 죽음이 혁명의 가려진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세상의 온갖 불의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사회정의를 세우려고 애쓴 진정한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 노인, 실업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출산하다 죽어가는 산모, 사생아, 미혼모 등 사회의 모든 약자들,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 개선에 마음을 쓰고,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단히 전위적인 사회사업이나 제도 들을 제안한 개혁가였기 때문이다. 실업자를 위한 공공작업장이며 배심원 판결 제도의 전신인 민간 법정의 창설을 주장하고, 두 세기가 지나야 생겨날 ‘시민연대협약PACS’과 유사한 동거형태를 ‘사회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하는 등 이 특출한 여성의 생각이 놀랍도록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프랑스에서 1791년 모든 차원에서 양성 평등 원칙을 제시한 ‘여성 권리 선언’을 작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주의(이즘)’라는 말이 존재하기도 한참 전에 성차별주의가 인종차별주의의 한 변종임을 이해하고, 여성 박해와 흑인 노예제도에 동시에 맞서 일어선 최초의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용감하게도 성적 자유를 포함한 모든 자유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혼과 동거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고, 가부장권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으면 시민권 정복도 한낱 미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미혼모와 사생아의 권리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이상理想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23~23쪽에서

올랭프 드 구주의 죽음 후 “근대적 인권 개념을 발명했고, 어느 나라보다 앞서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세계 최초로 노예제도를 철폐한 프랑스” 여성은 뒤늦게, 1944년에 이르러서야 참정권을 얻었다.

페미니즘의 한계를 논하기 이전에 페미니즘의 근원을 호명하다
저자 브누아트 그루가 올랭프 드 구주에게 표한 특별한 오마주


저자 브누아트 그루는 저널리스트, 작가, 페미니스트로 활동 중인 프랑스 페미니즘의 상징적 존재다. 영화로 제작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과 전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읽힌 여성이 처한 잔혹한 현실과 여성혐오를 고발한 명징한 에세이를 썼다. 1978년 페미니스트 월간지 <F 마가진>을 창간했으며 페미나상 심사위원과 남성형으로만 존재하는 직업, 직급, 직책 명칭의 여성형을 만들기 위한 용어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일했다. 그녀에 관해 다큐멘터리와 전기만화가 만들어져 헌정되었다.
당대의 지성 브누아트 그루가 망각의 역사에서 발굴하고 호명한 올랭프 드 구주의 삶은 “여전히 1700년대의 프랑스와 2014년의 한국의 차이 혹은 지금 지구를 살아가는 여성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새삼 질문하게 한다.”(13쪽)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글들은 때로 대단히 난삽하고 천진하거나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모든 관대한 대의들을 간파하고 옹호했으며, 인권선언의 제1조항에서 단 한 단어를 바꾸는 대담한 용기를 보인 한 여성을 증언해주는 글들이다.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이 하나의 단어는 남성들에게 던지는 도전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불순하고 참으로 혁신적이며 한마디로 혁명적인 생각, 가정의 균형과 사회의 균형을 위협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올랭프 드 구주의 동시대인 대부분의 눈에 그녀가 웃음거리로, 폭력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후대에 무책임한 여자로 기억되리라는 걸 정당화해주는 말이었다.
이 멋진 여장부들, 이 용감한 악녀들, 그때까지 아직 이름을 알지 못했던 페미니즘의 열정적인 여전사들은 정의를 돌려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들의 행위, 그들의 말 또는 그들의 저서가 그들을 위해 증언해주고 있다.
-95~96쪽에서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라는 선언은 페미니즘의 한계를 논하기 전에 여전히 유효한 페미니즘의 근원을 상기하며, 다시금 현재적 페미니즘 혹은 휴머니즘의 귀환을 환영할 차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브누아트 그루의 말대로 그 시원에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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